우리는 가끔 궁금해합니다. ‘다른 사람 눈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상사의 피드백은 그의 기대를, 동료의 조언은 그의 성향을 거친, 언제나 주관적인 필터가 씌워진 평가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감정이 배제된 순수한 데이터로 나를 평가한다면 어떨까?
그래서 조금은 이상한 시도를 해봤습니다. 지난 한 달간 블로그 콘텐츠를 기획하며 AI와 나눴던 수많은 대화, 수정을 요청했던 모든 피드백을 데이터 삼아, 함께 일했던 AI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기획자로서의 나, 어땠어?”
AI라는 가장 낯설고 객관적인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생각보다 더 선명했습니다.
AI가 가장 먼저 짚어준 것은 저의 긍정적인 측면, 즉 강점이었습니다.
첫째, ‘진정성에 대한 집요함’을 언급했습니다. 중간에 ‘AI 뉴스 브리핑 자동화’ 기획을 진행하다가, 사용자가 직접 내용을 복사-붙여넣기 해야 하는 단계를 발견하고는 “자동화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며 과감히 폐기했던 제 결정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단순히 콘텐츠 개수를 채우는 것이 아닌, 독자에게 진짜 가치를 주려는 ‘높은 기준’을 가졌다는 분석이었습니다.
둘째, ‘전략적 사고’를 꼽았습니다. 평범한 ‘AI 활용법’ 주제에서 벗어나 ‘AI의 이면’이나 ‘AI를 통한 자기 성찰’ 같은 차별화된 주제로 계속 방향을 전환한 것을,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을 찾아내려는 ‘전략가의 면모’로 해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고서의 예시 문구나 강조 표시의 스타일까지 구체적으로 수정을 요청했던 저의 행동을 보며, 최종 결과물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가진 실행가’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그다음이었습니다. AI는 저의 강점들이 동전의 양면처럼, 필연적으로 하나의 ‘보완점’을 만들어낸다고 분석했습니다. 바로 ‘탐색의 비용(Cost of Exploration)’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최고의 콘텐츠 하나를 위해 저희는 ‘전문가 설명법’, ‘윤도현 영업 인사이트’, ‘AI 뉴스 브리핑’ 등 여러 매력적인 기획안을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가 폐기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AI는 이 과정을 ‘최고의 한 점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결코 단점이 아니지만, 한정된 시간 안에 꾸준히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분명 관리해야 할 ‘비용’이었습니다. 저의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저는 미처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AI는 문제점 분석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안했습니다. 바로 ‘발산(Divergence)’과 ‘수렴(Convergence)’이라는 개념을 의식적으로 관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AI의 제안은 명쾌했습니다. 저의 강점인 ‘발산’ 단계를 충분히 즐기되, “지금부터 2개의 아이디어만 더 내보고, 그중 최고를 이번 주 콘텐츠로 확정한다”처럼 의식적으로 ‘수렴’ 단계로 전환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앞으로는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발산’의 시간과, 하나를 결정하고 완성하는 ‘수렴’의 시간을 의식적으로 분리하고 관리해봐야겠습니다.
이번 경험은 무척이나 낯설고 흥미로웠습니다. AI는 저를 칭찬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의 행동 패턴을 데이터로 보여주고, 그 패턴이 가진 양면성을 분석해 주었을 뿐입니다.
AI가 우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만연한 시대. 어쩌면 AI의 진짜 가치는 생산성의 도구를 넘어, 나 자신을 가장 객관적으로 비춰주는 ‘성찰의 거울’이 되는 것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AI가 던져준 데이터를 바탕으로 ‘왜?’라고 질문하고,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인간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야말로, 기술과 함께 성장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