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HubSpot, Salesforce 등 여러 글로벌 CRM 기업들이 앞다투어 자사 플랫폼에 생성형 AI를 탑재한 'AI 에이전트' 기능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데모 영상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미팅 내용을 요약해주는 것을 넘어, 그 내용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보낼 팔로우업 이메일 초안을 순식간에 작성하고, 최적의 발송 시간까지 제안해줍니다. 과거에는 상상만 했던 수준의 자동화가 현실이 된 것이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놀라운 기능들 대부분이 아직 영어 중심으로 지원되고 있어 국내 실무자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그림의 떡이구나" 하고 외면하기 쉽죠. 여기에 더해, 만약 AI가 작성한 이메일을 고객이 받았을 때 "성의가 없다"고 느끼거나 불쾌해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생깁니다.
저는 오늘,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언어 지원은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며, AI에 대한 고객의 거부감은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파도는 막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파도에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서핑보드를 준비하고 파도를 탈 준비를 하는 것이겠죠. 오늘은 곧 다가올 'CRM AI 에이전트' 시대를 위해, 한국의 마케터와 세일즈맨인 우리가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목차
먼저, CRM에 탑재된 AI 에이전트가 기존의 AI 챗봇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CRM에 축적된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 고객 대면 업무의 '초안'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마케터와 세일즈맨의 역할이 '실행(Doing)' 중심에서,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검토하고, 최종 완성하며, 전략을 지시하는 '감독(Directing)'의 역할로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저는 현재의 영어 중심 AI 에이전트를 '아직 한국말이 서툴지만, 엄청나게 유능한 외국인 신입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실무에 투입하긴 어렵지만, 이 신입사원이 한국어를 배우고 우리 팀에 적응했을 때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한국어 지원을 기다리며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이 바로 이 새로운 도구들의 능력을 학습할 최적의 시기입니다. 유튜브의 영어 데모 영상을 찾아보고, 관련 해외 블로그나 기술 문서를 브라우저 번역 기능의 도움을 받아 읽어보세요. "이 AI가 정확히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떤 결과물을, 어느 수준까지 만들어내는가?"를 명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마치 새로운 외국인 동료가 오기 전에, 그 사람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미리 꼼꼼히 살펴보는 것과 같습니다.
AI 에이전트는 결국 우리가 CRM에 입력한 데이터를 '재료'로 사용합니다. 좋은 재료가 있어야 좋은 요리가 나오듯, AI가 제대로 일하려면 데이터와 프로세스가 잘 정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AI가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최종 발송 버튼은 사람이 눌러야 합니다. AI가 작성한 초안을 그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검토하고 수정하여 '우리다움'을 입히는 것이 앞으로 마케터와 세일즈맨의 핵심 역량이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Gemini나 ChatGPT를 이용해 고객에게 보낼 이메일 초안을 작성하게 하고, '그냥 쓰는 것'이 아닌 'AI의 초안을 더 나은 글로 수정하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기술적인 준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고객의 정서적인 부분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AI가 보낸 성의 없는 메일"이라는 인식을 주지 않기 위한 몇 가지 전략입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100% 그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AI가 80%의 초안 작성 시간을 줄여주면, 우리는 덕분에 생긴 여유 시간을 고객에게 맞는 개인적인 인사말을 추가하거나, 이전 대화 내용을 언급하거나, 인간적인 감성이 느껴지는 마지막 문장을 더하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AI의 효율성과 인간의 진심이 결합될 때 고객은 감동합니다.
고객이나 내부적으로 AI 활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AI 덕분에 일이 편해졌어요"가 아니라, "AI를 활용해 단순 업무 시간을 줄이고, 그 아낀 시간만큼 고객님의 비즈니스를 더 깊이 분석하고 더 나은 전략을 제안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라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I 활용의 목적이 우리의 편의가 아닌, '고객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명확히 전달해야 합니다.
사실 고객이 '성의 없다'고 느끼는 것은 AI가 썼기 때문이 아니라, 내용이 '나와 상관없는 일반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AI 에이전트의 가장 큰 장점은 CRM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 개개인에게 놀라울 정도로 맞춤화된 메시지를 대량으로 생성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고객의 최근 활동, 관심사, 구매 이력 등을 반영한 '나만을 위한 메시지'는, 사람이 수동으로 보내는 일반적인 메시지보다 훨씬 더 큰 성의와 가치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CRM 속 AI 에이전트라는 거대한 파도는 이미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빠르게 허물어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파도가 발밑에 닥쳤을 때 허둥대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그 파도를 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마케터와 세일즈맨의 역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하던 일'에서 '머리로 하는 일'로, '실행자'에서 '전략가이자 감독'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팀의 데이터와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AI가 생성한 초안을 다듬는 연습을 시작해 보세요. 한국어 지원이 시작되는 그날, 여러분은 누구보다 먼저 AI라는 강력한 서핑보드를 타고 새로운 성과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