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저는 마케팅을 잘 모릅니다.
저는 회사의 AX(AI 전환)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GWS(Google Workspace) 영업을 겸직하고 있고요. 그러다 어느 시점에 지시를 받았습니다. "영업팀이 HubSpot으로 고객사에 메일을 보내는 워크플로우를 만들어야 하는데, AX 전환 차원에서 한번 설계해봐." AX의 일환이라고 하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니 HubSpot 이메일 자동화는 생각보다 낯선 영역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해보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도구니까, 부딪히면서 배우면 되겠지 하고요. 그런데 실제로 설계를 시작하니 꽤 빠르게 막혔습니다. 물어볼 마케팅 전문가가 주변에 없었고, 외부 컨설턴트를 쓸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때 저는 AI에게 물어봤고, 그 선택이 생각보다 훨씬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 글은 그 경험입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낯선 도구 앞에서 혼자 막혔을 때, AI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입니다.
요구사항은 이랬습니다. 고객사에 이메일을 보낼 때, 마케팅팀 공용 주소가 아니라 실제 담당 영업사원 이름으로 보내고 싶다. 거기에 고객사 업종에 맞는 내용도 조금씩 달랐으면 좋겠다. 얼핏 들으면 합리적인 요청입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자신의 담당자가 직접 보낸 것 같은 이메일이 훨씬 낫겠죠.
그런데 막상 설계를 시작하니 숫자가 보였습니다. 영업 담당자 5명, 업종 카테고리 14개. 모든 경우의 수를 커버하려면 이론상 70개의 워크플로우 분기가 필요했습니다. 각 담당자마다, 각 업종마다 다른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면 그게 맞는 계산이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여기서 헤맸습니다. 담당자 기준으로만 분기하면 5개로 줄일 수 있지만 업종 개인화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업종 기준으로만 하면 14개인데 담당자 정보가 빠집니다. 둘 다 잡으려고 하면 계속 70개로 돌아왔습니다. HubSpot에 익숙한 마케터라면 금방 다른 방법을 떠올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방법을 몰랐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습니다.
막힌 채로 며칠을 보내다가, 그냥 AI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특별한 기대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막혀있는 상황이니 한번 물어나 보자는 심정이었습니다.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HubSpot에서 담당자 5명과 업종 14개를 조합한 이메일 자동화를, 70개 분기 없이 구현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AI가 제시한 첫 번째 아이디어는 Smart Content였습니다. 저는 이 기능을 몰랐습니다. HubSpot Smart Content는 같은 이메일을 보내더라도 수신자의 속성에 따라 보이는 내용을 다르게 렌더링하는 개인화 기능입니다. 워크플로우 분기를 70개 만드는 대신, 하나의 이메일 안에서 콘텐츠 블록을 조건부로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이 기능이 있다는 걸 AI가 알려주기 전까지, 저는 존재 자체를 몰랐습니다.
처음엔 꽤 흥분했습니다. 이거면 70개 분기 문제가 한번에 풀릴 것 같았으니까요. 바로 HubSpot에서 Smart Content 설정을 열어봤습니다.
문제가 있었습니다. Smart Content의 분기 조건으로 쓸 수 있는 항목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방식, 즉 특정 커스텀 속성(property)을 기준으로 Smart Content 분기를 태우는 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Smart Content는 수신자의 라이프사이클 스테이지, 디바이스 타입, 국가 등 몇 가지 기본 조건만 지원했고, 업종 속성 값으로 직접 분기하는 기능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Smart Content 분기 조건 중에 List 멤버십이 있었습니다. HubSpot의 Active List로 업종별 그룹을 만들어두면, 그 리스트를 Smart Content 조건으로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업종 개인화 문제는 이렇게 풀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 개인화에서 또 다른 벽이 나왔습니다. AI는 Contact Owner 속성의 Personalization Token을 활용하는 방법을 안내해줬습니다. 발신자 이름이나 서명에 담당자 정보를 자동으로 연결하는 방식이었는데, 우리 회사는 Contact Owner가 아닌 Deal Owner를 기준으로 담당자를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HubSpot에서 Deal Owner 기반의 Personalization Token은 이메일에 직접 연결이 되지 않는 구조였고, 이건 AI도 해결해줄 수 없었습니다. AI가 모르는 우리 회사만의 내부 사정이었으니까요.
결국 처음의 70개 분기 대신, 담당자 5명 기준으로 5개 분기를 만들고, 각 이메일 템플릿 안에 Smart Content를 적용해 14개 업종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정리했습니다. 담당자 개인화는 워크플로우 분기로, 업종 개인화는 Smart Content로 역할을 나눈 겁니다. 조금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Deal Owner 구조라는 내부 사정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가장 유지 관리하기 쉬운 선택이었고, 결과적으로 처음 요구사항이었던 두 가지 개인화를 모두 달성했습니다.
AI는 Smart Content라는 방향을 알려줬습니다. 회사 내부의 Deal Owner 구조까지 파악해서 5개 분기라는 절충안을 찾은 건 제 몫이었고요. AI와 제 판단이 합쳐져서, 처음 요구사항이었던 담당자 개인화와 업종 개인화를 모두 달성했습니다.
제가 이 경험을 글로 쓰는 이유는, 이 상황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요즘 직장에서는 전담 인력 없이 이것저것 챙겨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AX 담당자가 HubSpot 자동화를 만지고, 기획자가 데이터 분석을 하고, 인사 담당자가 사내 IT 시스템을 관리합니다.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 영역을 맡게 되는 일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낯선 영역에서 막혔을 때, 예전이라면 선택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를 섭외하거나, 혼자 구글링하며 시간을 쏟거나, 그냥 포기하거나.
AI는 그 선택지를 하나 더 만들어줬습니다. 바로 물어볼 수 있는 전문가. 24시간 붙어있고, 비용도 들지 않고, 나를 바보 취급하지도 않는. 제가 HubSpot Smart Content를 몰랐을 때, AI는 "그런 기능이 있습니다"라고 알려줬습니다. 마케팅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결과였습니다.
물론 AI가 완벽한 답을 바로 준 건 아닙니다. Smart Content를 알려줬지만, 커스텀 property로 분기가 안 된다는 것까지는 사전에 경고해주지 않았습니다. Deal Owner 구조라는 내부 사정은 당연히 알 리도 없었습니다. 그 벽들은 제가 직접 부딪히면서 하나씩 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AI 덕분에 완전히 다른 방향을 알게 됐고, 처음의 70개 분기 문제에서 혼자 무한루프를 돌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한 가지를 분명히 느꼈습니다. 막혀있을 때 가장 필요한 건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70개 분기라는 구조적 문제 안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생각이 그 틀 안에 갇혀 있었고,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AI가 Smart Content를 알려줬을 때, 단순히 기능 정보를 받은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프레임을 받은 겁니다.
일단 방향이 생기면 그 다음은 달라집니다. Smart Content에서 property 분기가 안 된다는 걸 알았을 때, 저는 이미 "워크플로우 분기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메일을 개인화한다"는 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틀이 있었기 때문에, Deal Owner 문제에 막혔을 때도 "그러면 담당자 기준으로 5개만 나누고, 업종은 각 이메일 안에서 Smart Content로 처리하면 되겠다"는 판단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 틀이 없었다면, 70개 분기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AI가 해준 일은 결국 이것입니다. 제가 갇혀있던 프레임을 바꿔줬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AI 활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보통 두 가지 방향이 많습니다. 하나는 "AI가 전문가를 대체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AI를 잘 쓰려면 좋은 프롬프트를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마케팅 전문가가 아닌데, AI 덕분에 전문가가 쓸 법한 접근법으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AI가 저를 전문가처럼 만들어준 건 아닙니다. 다만 전문가가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 HubSpot Smart Content라는 기능의 존재를 저도 알게 해줬습니다. 그리고 좋은 프롬프트가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70개 분기 없이 구현하는 방법이 있을까요?"라는 단순한 질문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가끔 AI를 쓰지 않는 분들 중에 이런 이유를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AI가 거짓말을 하더라", "틀린 정보를 자신 있게 말해서 오히려 더 헷갈렸다." 맞는 말입니다. AI는 틀릴 수 있고, 모르는 걸 아는 척하기도 합니다. 저도 이번에 Smart Content 방법을 시도했다가 막힌 것처럼, AI가 알려준 방법이 항상 바로 통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AI가 알려준 방향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70개 분기 안에서 헤매고 있었을 겁니다. 틀릴 수 있어도, 아예 방향이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저는 마케팅 전문가가 아닙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낯선 도구 앞에서 막혔을 때, 더 이상 혼자 무한루프를 돌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잘 모르는 분야에서 막히면, 일단 AI에게 물어보세요. 완벽한 답이 아니더라도, 생각의 방향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유튜브나 블로그를 보면 AI 활용 콘텐츠가 넘쳐납니다. 업무 완전 자동화, 코딩 없이 앱 만들기, AI 에이전트로 반복 업무 제로화. 분명히 대단한 활용법이고, 그렇게 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면서 "나는 저렇게까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면, 어쩌면 AI를 잘 쓴다는 기준을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AI를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씁니다. 하나는 지식 전문가로서의 AI입니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입니다. 이번 HubSpot 사례처럼, 전혀 몰랐던 기능의 존재를 알려주거나, 막혀있던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해주는 것입니다. 질문 하나로 마케팅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갓 입사한 신입사원으로서의 AI입니다. 방향은 내가 정하고, AI에게 실행을 맡기는 방식입니다. 보고서 초안 잡기, 회의록 정리, 반복적인 문서 작업, 이메일 문구 다듬기 같은 것들입니다. 신입사원에게 일을 시키듯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결과물을 검토해서 방향을 잡아주면 됩니다.
완전 자동화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것은 분명 AI를 가장 잘 쓰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수준에 닿지 않더라도, 막힌 문제 앞에서 AI에게 방향을 묻고 그 힌트로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도 AI를 잘 쓰는 방법입니다. 자신의 상황과 수준에 맞게 골라 쓰는 것, 저는 그게 AI를 제대로 활용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AI가 모든 업무를 다 해결해주는 날이 올까요? 저는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지금은 AI와 사람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시기입니다. 회사 내부 사정을 파악하고 최선의 절충안을 찾는 건 아직 사람의 몫이고, AI는 그 과정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서 혼자 고민하다 막혔을 때, 옆에 물어볼 수 있는 누군가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합니다.
전문가를 섭외하기에는 비용이 부담스럽고, 구글링하기에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포기하기엔 아까운 문제. 그런 순간에 AI는 꽤 쓸모 있는 존재입니다.
저처럼 본업이 아닌 도구를 맡게 된 분들께, 혹은 자기 분야가 아닌 문제 앞에 혼자 서 있는 분들께 이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